달리기 대회를 준비하면서
바뀐 일상 루틴
10km 대회 등록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내 하루가 조용히 재설계됐다
올해 3월, 회사 슬랙에 공유된 링크 하나를 클릭했다. 서울 봄 10km 달리기 대회 모집 공고였다. 평소 같으면 '나중에 한번 나가봐야지' 하고 닫았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냥 결제했다. 참가비 35,000원. 환불 불가 조건이었다.
버튼을 누르고 확인 메일을 받는 데 10초도 안 걸렸다. 그런데 그 10초가 그 이후 두 달의 내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달리기는 여전히 달리기였지만, 목표가 생긴 달리기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루틴이 바뀌고, 잠자는 시간이 바뀌고, 밥 먹는 방식이 바뀌고, 심지어 코딩하는 패턴까지 달라졌다.
이 글은 그 두 달의 기록이다. 대회 준비가 일상에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뭘 잘 했고 뭘 실패했는지, 그리고 대회를 마친 지금 무엇이 남았는지.

대회를 등록하기 전까지 나의 아침은 단순했다. 알람을 두세 번 끄고, 8시 50분쯤 겨우 일어나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노트북을 열었다. 재택 근무가 많은 편이라 출근 시간 압박이 없었고, 그게 오히려 아침 루틴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대회 등록 후 첫 주 월요일, 나는 처음으로 6시 30분에 알람을 맞췄다. 훈련 계획상 아침 달리기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처음엔 실패했다. 6시 30분 알람을 끄고 7시에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7시에 달리기를 나갔다. 예전의 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기한 건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온 아침이 완전히 달랐다는 거다. 샤워를 하고 커피를 내리면서 이미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게 오전 업무 집중도를 바꿨다. Next.js 코드를 짜다 막혔을 때 예전엔 유튜브를 틀었는데, 달리기 후 아침엔 그냥 문서를 뒤졌다. 달리기가 하루의 톤을 설정해주는 것 같았다.
대회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훈련 계획이라는 걸 짜봤다. 예전엔 그냥 달리고 싶을 때 달렸다. 거리도, 페이스도 그날 기분에 맡겼다.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8주 안에 10km를 목표 시간 안에 달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니까 체계가 필요해졌다.
개발로 치면, 이전엔 기능 단위로 즉흥적으로 코딩하던 것을 스프린트 계획으로 바꾼 것과 비슷했다. 이번 주는 뭘 달성해야 하고, 이번 달은 어느 수준이 돼야 하는지. 달리기에 Scrum을 도입한 셈이었다.
5km
—
5km
트레이닝
4km
9km
휴식
개발자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올빼미가 됐다. 밤 12시는 기본이고, 사이드 프로젝트나 Vercel 배포 작업을 하다 보면 새벽 2시가 넘기 일쑤였다. 수면 부족이 퍼포먼스에 미치는 영향을 알면서도 실천이 안 됐던 거다. 대회 준비가 그걸 바꿨다.
이른 아침 달리기를 하려면 일찍 자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2주는 억지였다. 11시에 누워도 잠이 안 왔다. 그런데 달리기 강도가 올라가면서 몸이 알아서 잠을 당겼다. 운동이 수면의 품질을 바꾸는 게 이런 거구나를 처음 경험했다. 가민 앱의 수면 점수가 두 달 사이에 눈에 띄게 올랐다.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예상 밖이었다. 달리기 대회를 준비한다고 식단까지 바꾸게 될 줄 몰랐다. 처음엔 훈련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5주차쯤 되니까 훈련 퀄리티가 먹는 것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걸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라면이나 마라탕을 먹은 다음 날 아침 달리기는 눈에 띄게 무거웠다. 처음엔 수면 탓인 줄 알았는데, 수면이 같아도 음식에 따라 달리기 컨디션이 달랐다. 데이터를 믿는 개발자답게 2주 동안 식단과 달리기 페이스를 같이 기록했더니 패턴이 보였다. 단백질 비율이 높은 날의 다음 날 달리기 페이스가 평균 12초 빨랐다.
- 아침 거르거나 커피만
- 점심 라면, 마라탕, 덮밥류
- 저녁 배달 음식 빈번
- 간식 과자, 탄산음료
- 단백질 섭취 거의 없음
- 술자리 주 2~3회
- 계란 2개 + 단백질 쉐이크
- 점심 닭갈비, 샐러드, 솥밥류
- 저녁 직접 조리 비율 높임
- 간식 바나나, 견과류로 교체
- 단백질 체중 × 1.6g 목표
- 술자리 주 1회 이하 자제
8주 준비 기간 내내 순탄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진짜로 포기를 고민한 순간이 두 번 있었다. 두 번 다 마음속으로 '환불 안 되는 게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예상 못 했던 부분이다. 달리기 훈련 계획을 짜면서 '이 주에는 뭘 달성해야 하는가'를 매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게 개발 업무 계획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이전에는 GitHub 이슈를 열어두고 그때그때 처리하는 식이었는데, 대회 준비 이후로 주간 단위로 마일스톤을 정리하고 기능 단위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게 됐다. 템포런이 불편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훈련이듯, 마감이 있는 작업은 불편한 집중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달리기의 규율이 코딩의 규율로 전이된 것이다.
대회 등록은 단순히 달리기 목표를 만든 게 아니었다. 그 목표가 수면, 식단, 아침 루틴, 업무 계획까지 연쇄적으로 당겨올렸다. 하나의 목표가 일상 전체의 수준을 올리는 레버가 됐다.
— 대회를 마치고 러닝 노트 마지막 장에 쓴 문장두 달의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 대회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실용적인 조언을 정리했다. 이 중 절반은 내가 몰라서 시행착오를 겪은 것들이다.
- 등록 당일 — 8주 훈련 계획 초안 작성 (Notion 또는 종이 노트)
- 1~2주차 — 현재 달릴 수 있는 거리의 80% 수준으로 시작
- 매주 거리 증가는 전 주 대비 10% 이내로 제한
- 주 1회 롱런, 주 1회 템포런, 나머지는 이지런 구성
- 수면 7시간 이상 확보 — 훈련 효과의 50%는 수면에서 나옴
- 훈련 중 통증이 3일 이상 지속되면 즉시 강도 낮추기
- 대회 2주 전부터 볼륨 30~40% 축소 (테이퍼링 시작)
- 대회 전날 — 새 메뉴 금지, 익숙한 탄수화물 위주 식사
- 대회 당일 — 출발 2~3시간 전 가벼운 식사 완료
- 초반 1~3km — 목표 페이스보다 10~15초 느리게 시작
메달은 책상 옆에 걸려 있다. 가끔 코딩하다 막히면 그걸 본다. 완주 메달이 '저게 됐으면 이것도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주는 것 같다.
더 의미 있는 건 루틴이다. 대회가 끝났는데도 아침 달리기 루틴이 남아 있다. 수면 시간이 여전히 11시 안팎이다. 점심에 마라탕 당기는 빈도가 줄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만들어진 루틴들이 대회가 없어져도 관성으로 유지되고 있다.
개발 일을 하면서 "배포가 목표가 아니라 코드를 짜는 습관이 목표"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달리기도 그런 것 같다. 대회 완주가 목표가 아니라,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상이 진짜 목표였다. 결과는 보너스였고, 루틴이 실제 자산이었다.
다음 대회는 이미 등록했다. 하프 마라톤, 21km. 또 다른 8주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8주도 지금의 나를 조용히 다시 재설계할 거다.
목표가 생기고 나서 일상이 달라진 경험, 댓글로 나눠주세요.
아직 대회 등록 전이라면 — 지금 바로 신청 페이지를 열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환불 불가 조건이 생각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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