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메달을 처음 받던 날의 감동
그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10개월 달리기의 끝에 목에 걸린 것 — 금속 조각이 아니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10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인터벌 워킹으로 시작해 5km를 걷지 않고 달리게 됐고, 한강 코스를 익혔고, 인터벌 트레이닝도 조금씩 해봤다. 부상도 두 번 겪었다. 겨울에 빈 새벽 공원을 달리다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도 안다.
대회 등록은 우연이었다. 슬랙 러닝 채널에 링크가 공유됐고, 손이 먼저 클릭하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확인 메일을 받고 나서야 실감했다. 대회 당일까지 8주가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달리기가 달라졌다. 목표가 생긴 달리기는 다른 달리기였다.
그리고 대회 당일, 63분 32초로 10km를 완주했다. 피니시 라인을 넘고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금속의 무게가 아니라 —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의 무게가.

대회 전날 밤에 거의 못 잤다. 걱정이 아니라 흥분이었다. 알람을 4시 30분에 맞췄는데 4시 15분에 눈이 떠졌다. 아침을 먹으면서 가민 페이스 알람을 다시 설정했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수백 명이 달리기 복장으로 모여 있는 걸 보고 처음으로 "내가 대회에 나왔구나"를 실감했다.
피니시 라인을 넘고 멈춰 서서 30초 동안 아무것도 못 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달리기 10개월의 장면들이 이상하게도 순서 없이 스쳐 지나갔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는데, 달리고 나서 카페에서 쓴 러닝 노트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1km도 못 달리던 날. 무릎이 아파서 2주를 쉬던 날. 새벽에 알람 끄고 다시 누웠다가 결국 일어나서 신발 신은 날들. 비 맞으면서 달린 날. 대회 8주 전 처음으로 10km를 제대로 달린 날.
그것들이 전부 지금 이 메달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메달은 오늘 달린 63분을 증명하는 게 아니었다. 10개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완주 메달을 받기 전과 후, 달리기를 대하는 방식이 바뀐 게 있다. 작은 것들이지만, 쌓이면 달리기 전체의 결이 달라진다.
- 달리기는 그냥 건강을 위한 운동
- "대회 같은 건 아직 나한테 먼 얘기"
- 달리기를 취미라고 말하기 애매했음
- 스스로 러너라고 생각하지 않았음
- 완주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몰랐음
- 기록보다 완주 자체가 목표라는 게 실감 안 됐음
- 달리기가 내가 하는 것 중 하나가 됨
- 다음 대회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함
- "달리기 해요"를 편하게 말하게 됨
- 스스로 러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음
- 완주의 감각을 알게 됐으니 다시 달릴 수 있음
- 기록은 다음 목표, 완주는 이미 됐다는 확신
집에 돌아와서 메달을 어디에 둘까 잠깐 생각했다. 서랍에 넣으면 잊어버릴 것 같았다. 트로피 같은 걸 진열장에 넣는 것도 어색했다. 결국 모니터 옆 벽에 걸었다.
작업하다가 막히면 가끔 그걸 본다. 거기서 직접적인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는다. 근데 "저게 됐으면 이것도 된다"는 생각이 어딘가에서 올라온다. Supabase RLS 설정이 자꾸 틀릴 때, TypeScript 제네릭이 안 맞을 때, 배포가 계속 실패할 때. 메달이 거기 있다는 게 이상하게 버팀목이 됐다.
어차피 금속 조각이다. 하지만 그 금속 조각 안에 내가 모르는 새벽의 달리기들이 들어 있다. 포기하려다 다시 신발 신은 날들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그냥 서랍에 넣을 수가 없었다.
완주 메달은 달리기를 증명하는 게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거였다. 그 차이가 그 무게를 만들었다.
— 대회 완주 당일 저녁, 모니터 옆에 메달을 걸고 나서 든 생각- 5km를 걷지 않고 달릴 수 있으면 10km 대회 등록 가능 — 지금 바로 신청하기
- 등록 후 8주 훈련 계획 수립 — 매주 롱런 거리 늘리기
- 대회 전날 탄수화물 식사, 수분, 10시 이전 취침
- 가민 페이스 알람 목표보다 15초 느리게 설정 — 초반 억제
- 대회 당일 새 신발, 새 옷 금지 — 모든 건 훈련에서 검증된 것만
- 피니시 게이트가 보이면 남은 힘을 아끼지 않기
- 메달 받고 나서 30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 그 감정 충분히 느끼기
- 완주 메달은 서랍 말고 눈에 보이는 곳에 두기
두 번째 대회는 이미 등록했다. 하프마라톤이다. 처음 10km 대회를 등록할 때와 비슷한 두근거림이 있다. 아직 21km를 달려본 적 없다는 불안감도 비슷하다. 그래도 누르게 됐다. 완주 메달 하나를 받고 나서야 다음 버튼이 눌러졌다. 메달은 지금 달리기의 증거가 아니라, 다음 달리기의 이유가 됐다.
그 순간의 감정, 어떤 대회였는지, 지금 메달이 어디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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