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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스페르미아 가설, 우주를 향하는 생명의 씨앗

by 바다011 2025. 11. 22.

 

지구 생명의 기원이 실은 외계에서 왔다면 어떨까요? 운석과 혜성을 타고 우주를 떠돌며 행성 사이를 이동하는 미생물. 황당해 보이지만 과학적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는 판스페르미아 가설을 파헤쳐봅니다. 본문에서 판스페르미아 가설, 우주를 향하는 생명의 씨앗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판스페르미아 가설
판스페르미아 가설

 

우주를 항해하는 생명의 씨앗

생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가장 보편적인 이론은 지구에서 자연발생했다는 것이다. 원시 바다의 화학물질들이 번개와 자외선 에너지를 받아 복잡한 유기분자가 되고, 결국 자기복제 능력을 갖춘 최초의 생명이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생명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됐고, 우주 공간을 여행해 지구에 도착했다는 주장이다. 이를 판스페르미아 가설이라 부른다. 그리스어로 '모든 곳에 씨앗'이란 뜻이다. 처음 들으면 SF 소설 같지만, 의외로 오랜 역사를 가진 과학 이론이다. 19세기말 독일 화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가 처음 제안했고, 20세기 초 스웨덴 화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가 정식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아레니우스는 박테리아 포자가 별빛의 압력을 받아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행성에 착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비웃음을 샀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 가설이 완전히 터무니없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운석에서 아미노산이 발견됐고, 우주 공간의 극한 환경에서 미생물이 생존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외계에서 온 생명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판스페리미아 가설 

판스페르미아에는 크게 세 가지 버전이 있다. 첫째는 자연 판스페르미아다. 운석 충돌로 행성 표면의 암석이 우주로 날아가고, 그 안에 미생물이 있다면 다른 행성까지 운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성에 큰 소행성이 충돌하면 파편이 우주로 튕겨나가고, 일부는 지구 중력에 포획돼 떨어진다. 실제로 지구에서 발견된 화성 운석만 해도 수십 개다. 만약 초기 화성에 생명이 있었다면, 그 미생물이 운석을 타고 지구로 왔을 가능성이 있다. 암석 내부는 우주 방사선과 극한 온도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되므로 미생물이 수백만 년을 버틸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둘째는 혜성 판스페르미아다. 혜성은 얼음과 암석으로 이뤄진 천체인데, 내부에 유기물과 물이 풍부하다. 일부 과학자들은 혜성 내부에서 미생물이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혜성이 행성에 충돌하면 생명의 씨앗을 전달하는 셈이다. 67P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을 탐사한 로제타 미션은 혜성에서 복잡한 유기분자를 발견했다. 생명까지는 아니지만, 생명의 재료는 분명히 있었다. 셋째는 성간 판스페르미아다. 가장 극단적인 버전으로, 생명이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한다는 주장이다. 별이 폭발할 때 생명을 가진 물질이 우주로 흩어지고, 성간 공간을 수백만 년 떠돌다가 새로운 별계에 도착한다는 시나리오다. 오무아무아 같은 성간 천체가 생명을 운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간 공간의 강한 방사선과 극저온을 견디기는 매우 어렵다. 일부는 의도적 판스페르미아도 제안한다.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 고의로 생명을 우주에 뿌린다는 것이다. DNA를 담은 캡슐을 우주선으로 보내 은하 곳곳에 생명을 퍼뜨리는 식이다. 프랜시스 크릭 같은 유명 과학자도 이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증거와 반론, 그리고 남은 질문들

판스페르미아를 지지하는 증거는 점점 늘고 있다. 2020년 일본 하야부사2 탐사선이 소행성 류구에서 가져온 샘플에서 20종 이상의 아미노산이 발견됐다. 아미노산은 생명의 기본 구성 요소다. 2011년 NASA 연구팀은 캘리포니아 호수의 박테리아를 우주정거장 외부에 18개월간 노출시켰는데, 일부가 살아남았다. 우주 방사선, 진공, 극저온을 견뎌낸 것이다. 2018년엔 타르디그레이드라는 미세동물이 달 탐사선 추락 사고로 달 표면에 뿌려졌는데, 일부는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타르디그레이드는 영하 200도에서도, 방사선을 쬐어도 죽지 않는 극한 생명체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판스페르미아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생명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 해도, 그렇다면 그곳에서는 어떻게 시작됐는가? 문제를 한 단계 뒤로 미룰 뿐이다. 또한 대기 진입 시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데, 미생물이 이를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암석 깊숙한 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판스페르미아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생명이 우주에 얼마나 흔한가? 지구 생명이 화성에서 왔다면, 화성과 지구는 생명의 기원을 공유한 셈이다. 우리는 화성인의 후손일 수 있다. 더 나아가 판스페르미아가 사실이라면 은하 전체가 생명으로 연결돼 있을 수 있다. 한 별계에서 시작된 생명이 수억 년에 걸쳐 은하 곳곳으로 퍼졌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생명의 씨앗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거대한 정원인 셈이다. 앞으로 화성 샘플을 지구로 가져오면 답에 가까워질 것이다. 만약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이 발견되고, 그것이 지구 생명과 유사하다면? 판스페르미아는 가설에서 이론으로 승격될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