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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형성 이론: 거대 충돌 가설의 증거들

by 바다011 2025. 10. 21.

45억 년 전, 화성 크기의 원시 행성 테이아가 초기 지구와 충돌하면서 달이 탄생했다는 거대 충돌 가설은 현재 가장 유력한 달 형성 이론입니다. 아폴로 미션이 가져온 월석 샘플의 동위원소 분석, 지구-달 시스템의 각운동량, 달의 철 핵 부족 현상 등 다양한 증거들이 이 극적인 시나리오를 뒷받침합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현된 충돌 과정은 불과 24시간 만에 달의 기본 구조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며, 최근 발견된 지구 맨틀 깊숙한 곳의 거대 저속도 영역이 테이아의 잔재일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달 형성에 관한 여러 가설들의 등장과 쇠퇴, 그리고 거대 충돌 가설이 어떻게 과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상세히 탐구합니다.

 

달의 형성 이론
달의 형성 이론

 

달의 형성 이론

매일 밤하늘에 떠오르는 달은 너무나 당연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사실 태양계에서 행성 대비 이렇게 큰 위성을 가진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지구 지름의 4분의 1에 달하는 달의 크기는 명왕성-카론 시스템을 제외하면 태양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비율입니다. 만약 달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행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선 지구의 자전축이 현재처럼 23.5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고 0도에서 85도 사이를 불규칙하게 요동쳤을 것입니다. 화성이 겪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극심한 기후 변화를 일으켜 생명체 진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또한 달이 만드는 조석 현상이 없었다면, 초기 생명체가 바다에서 육지로 진출하는 과정도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갯벌 지대는 해양 생물이 육상 환경에 적응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하루도 현재의 24시간이 아닌 6~8시간 정도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달의 조석력이 지구 자전을 서서히 늦춰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4억 년 전 데본기의 산호 화석을 분석한 결과, 당시 1년이 400일이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처럼 달은 단순한 지구의 동반자가 아니라, 지구 환경과 생명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달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 질문은 수세기 동안 천문학자들을 괴롭혀온 난제였습니다.

테이아와의 충돌, 그 극적인 순간의 재구성

거대 충돌 가설에 따르면, 약 45억 3천만 년 전 태양계 형성 초기에 지구는 현재 질량의 90% 정도를 가진 원시 지구였습니다. 이때 화성 크기의 원시 행성 테이아가 시속 4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지구와 비스듬히 충돌했습니다. 테이아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달의 여신 셀레네의 어머니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충돌 각도는 약 45도였으며, 이는 달 형성에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정면충돌이었다면 두 천체가 완전히 합쳐졌을 것이고, 스치듯 지나갔다면 달을 만들 만큼의 물질이 방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충돌 직후 수 분 만에 테이아의 철 핵은 중력에 의해 지구 핵과 합쳐졌고, 맨틀 물질들은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구 표면 온도는 1만 도를 넘어 완전히 용융된 마그마 바다가 되었습니다. 방출된 물질들은 로슈 한계 바깥쪽에서 원반을 형성했고, 놀랍게도 불과 1개월에서 1년 사이에 서로 뭉쳐 원시 달을 만들었습니다. 2022년 NASA의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더욱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특정 조건 하에서는 달이 단 몇 시간 만에 현재 질량의 60% 이상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뮬레이션은 달 표면의 일부 지역이 지구 맨틀 물질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최근에는 지구 내부에서 테이아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진파 분석을 통해 발견된 아프리카와 태평양 아래 깊은 맨틀의 거대 저속도 영역(LLSVPs)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영역들은 주변보다 밀도가 3.5% 높고 크기가 대륙만 한데, 테이아의 맨틀 잔재가 45억 년 동안 지구 내부에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증거들의 퍼즐: 왜 거대 충돌 가설인가

거대 충돌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여러 경쟁 이론들과의 치열한 검증 과정이 있었습니다. 분리설은 초기 지구의 빠른 자전으로 인해 적도 부분이 떨어져 나가 달이 되었다는 이론이었지만, 현재 지구-달 시스템의 각운동량으로는 이런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포획설은 달이 원래 독립적인 천체였다가 지구 중력에 포획되었다는 주장이었으나, 달과 지구의 산소 동위원소 비율이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과 모순됩니다. 동시 생성설은 지구와 달이 같은 원시 행성 구름에서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이론이었지만, 달의 철 함량이 지구보다 현저히 낮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아폴로 미션이 가져온 382킬로그램의 월석은 거대 충돌 가설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월석 분석 결과 달의 암석은 지구 맨틀과 매우 유사한 조성을 보였지만, 철 함량은 매우 낮았습니다. 이는 충돌 시 테이아의 철 핵은 지구와 합쳐지고 맨틀 물질만 방출되어 달을 형성했다는 시나리오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또한 월석에서 휘발성 원소들이 극도로 부족한 것도 고온 충돌 과정에서 증발했기 때문으로 설명됩니다. 아연의 동위원소 분석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가벼운 아연 동위원소가 무거운 것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데, 이는 고온에서 가벼운 동위원소가 우선적으로 증발했음을 의미합니다. 지구-달 시스템의 높은 각운동량도 중요한 증거입니다. 태양계 다른 행성들과 비교했을 때 지구-달 시스템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각운동량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고속 충돌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최신 연구에서는 달 내부에 작은 철 핵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 역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예측한 결과와 일치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증거들이 하나의 이론으로 수렴하는 것은 과학사에서도 드문 일이며, 거대 충돌 가설이 얼마나 강력한 설명력을 가졌는지를 보여줍니다.